'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네 주제를 알라,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가?
가만보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는데 싫어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과 점심식사를 할 때는 메뉴선정에 시간이 상당히 걸릴 수 있으니 다섯가지정도 메뉴를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사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는 두 가지 보상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불쾌함을 인지하고 불쾌함으로부터 회피함으로써 안도감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쾌락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함으로서 도파민수용체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원시 자연으로부터의 생존을 위해 첫 번째 메커니즘이 먼저 형성되었다. 상식적으로 일단 안전이 확보되어야 밥도 먹고 응응도 하면서 두번째 욕구를 충족시키킬테니 납득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야외응응은 외부 위험에 대해 스스로를 노출시킴으로서 느끼는 긴장감에 도파민까지 발생시켜 쾌감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야기는 왜 여기까지 흘러온 것인가.
아무튼, 그래서 싫어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보다 명확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싫어하는 것만 피해다니는 것보다는 더 고차원적이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것 저것 시도해 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많이 찾아놓도록 하자.
그러나 한 편으로는 좋아하는 것에 매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우리의 뇌는 만족을 모른다고 하니까. 어떤 취미를 새롭게 가지게 되었을때, 처음에는 무언가를 배우고 내가 성장한다는 것이 마냥 즐겁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처음처럼 빨리 실력이 늘지 않는 나에게 불만이 생긴다. 처음처럼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다. 나보다 잘하는 옆사람도 눈에 들어온다. 더 고급의, 더 고난이도의 결과를 내야만 뇌가 만족한다. 한 가지 취미에 진득하니 빠져서 끝을 보지 못하는 나의 성격은 이러한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자기 방어기제,일리는 없고 그냥 의지박약에 가까울테지만, 역시 취미에는 너무 목숨걸지 않는게 좋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행복은 그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비탄에 강에 빠지지 않고, 쾌락의 늪에서 허우적대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는 그저 '오늘'을 살 뿐이다.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그녀는 나에게 시디를 한 장 선물해줬었다. 아니, 더블팩이니까 두 장이구나. 시디에서 지금 흘러나오는 곡은 'Life can be so beautiful'. 부디, 그녀의 생 또한, 아름다웠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