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좋아하는 직장선배와 함께 퇴근할 일이 있었습니다. 문득 선배가 묻더군요.
"어떻게 사는게 멋있게 사는걸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고민 끝에 대답했습니다.
"욕심없는 삶이 제일 멋있지 않을까요?"
"맞아, 그런데 왜 자꾸 욕심부리게 될까?" "내가 그것에 대해 몇일 고민해봤는데, 결론은 비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십분 공감했습니다. 증명이 필요없는 명제죠. 인류의 역사가 이 명제를 귀납적으로 증명해왔습니다.남과의 비교는 곧 경쟁이며, 태초에 경쟁은 생존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총량 자체가 부족한 의식주를 누가 더 많이 소유하는 가가 곧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축적한 노하우가 인류 전체의 생존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른 지금도 경쟁은 사라지지 않고 심해지기만 합니다. 오늘날의 경쟁은 때때로 생존과 관계없이 그 자체가 목적으로 전도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보기에 이미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 그러한 경향을 더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맑스가 말한 자본의 속성처럼 말이죠.
'경쟁이 생존의 문제가 아닌 이들'의 욕심이 경쟁을 심화시키고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을 생존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막고자, 혹은 완화시켜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한 번 가속도가 붙은 열차의 속도를 늦추기란 쉽지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욕심 없이 살 수 있을지, 고민은 깊어만 가는 가운데 맥북의 구매결정 버튼을 누르고 울고있는 밤입니다.
"어떻게 사는게 멋있게 사는걸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고민 끝에 대답했습니다.
"욕심없는 삶이 제일 멋있지 않을까요?"
"맞아, 그런데 왜 자꾸 욕심부리게 될까?" "내가 그것에 대해 몇일 고민해봤는데, 결론은 비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십분 공감했습니다. 증명이 필요없는 명제죠. 인류의 역사가 이 명제를 귀납적으로 증명해왔습니다.남과의 비교는 곧 경쟁이며, 태초에 경쟁은 생존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총량 자체가 부족한 의식주를 누가 더 많이 소유하는 가가 곧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축적한 노하우가 인류 전체의 생존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른 지금도 경쟁은 사라지지 않고 심해지기만 합니다. 오늘날의 경쟁은 때때로 생존과 관계없이 그 자체가 목적으로 전도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보기에 이미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 그러한 경향을 더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맑스가 말한 자본의 속성처럼 말이죠.
'경쟁이 생존의 문제가 아닌 이들'의 욕심이 경쟁을 심화시키고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을 생존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막고자, 혹은 완화시켜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한 번 가속도가 붙은 열차의 속도를 늦추기란 쉽지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욕심 없이 살 수 있을지, 고민은 깊어만 가는 가운데 맥북의 구매결정 버튼을 누르고 울고있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