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열전

2012. 2. 2. 00:20 from 생활의 발견
2012년 하고도 1월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잭다니엘 따위를 홀짝이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만, 그래도 금주선언 같은건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은 나는 알콜 중독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아니 사실 스스로가 비루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는 요즘이지만 조금이라도 자책의 무게를 덜어보고자 키보드를 두들겨본다. '이거라도 하면 스스로가 덜 한심해 보이겠지.'라는 마음으로.

유사이래 비범한 재능을 가진 자들은 모두 술을 사랑했다고 전해져 온다. 수염이 긴 어느 사내는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고 하고, 유럽을 차지한 남자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소주 한 병 원샷 입니다, 노래를 못 하면 장가를 못 가요, 쭉 쭉쭉쭉 술이 들어간다, 언제까지 어께 춤을 추게 할거야, 그랬을 거야, 아님 말고.

아무튼 오늘은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해장국집 세 곳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1 청진동 해장국

원래 청진동은 종로구에 있다. 해장국집이 유명한 동네이고, 그래서 '청진동해장국'은 고유명사가 되었지만, 종로구 청진동과는 전혀 관련없는 청진동 해장국이 광주에 있다.  위치는 광주광역시 서구 어드메, 주특기는 돼지머릿고기국밥.

어설픈 이름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 맛은 절대 어설프지 아니하나니. '감칠맛'의 정의가 무엇인지 여기서 비로소 깨닫을 수 있다. 풍부한 머릿고기와 입에 착착 감기는 국물맛. 점심시간엔 일대 골목길이 전부 주차장이 되버린다. 부산에 돼지국밥이 있다면 광주엔 청진동해장국이 있다,고 하기엔 이름이 너무 어설프지만 그 맛은 절대 어설프지 아니하나니. 그 위치가 궁금하다면 서광주IC에서 잉요를 찾아주세요.

#2 신사동 따로국밥

장사가 잘 되서 확장 이전했다. 원래는 허름한 상가주택 건물 2층에 위치했었으나 지금은 안 허름한 식당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주무기는 선지해장국.

선지해장국이라는 단어에 양평해장국 쯤을 떠올렸다면 크나큰 오산, 이곳의 선지 해장국은 제주 삼다수처럼 해맑다. 소내장 없이 선지와 콩나물 만으로 끓여낸 국물은 오욕칠정으로 더럽혀진 위장에 떨어진 한줄기 소녀시대의 땀방울과도 같다. 선지가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주차타워에 40분 간 무료주차가 가능하다. 이 맛있는 해장국을 먹는데 40분 이상이 걸린다는건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해장 후 찾아올 기말시험 성적표같은 술똥의 기운을 고려한다면 다소 야박하다 할 수 있다. 한 그릇에 팔천원이라는 가격도 다소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긴 신사동이다. 건너편 가로수 길에서 얼음 몇 개 띄운 커피 한 잔에 얼마나 하는지 떠올려 보자.

#3 현대옥 콩나물 국밥 

전주는 콩나물국밥의 고향이다. 콩나물 국밥은 크게 두 가지 양식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모든 재료를 뚝배기 안에 넣고 팔팔 끓여내는 방식,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살짝 끓여서 맑은 국물맛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현대옥은 후자에 속한다. 마늘맛이 느껴지는 맑은 국물이 살짝 끓여져 나오고, '스뎅그릇'에 날계란이 하나 담겨서 나온다. 날계란 위에 국물을 조금 붓고 같이 나온 김을 부수어 넣은 뒤 훌훌 저어 마시면 위장이 단백질로 코팅되는 기분.

별도로 천원에 판매되는 삶은 오징어를 시켜서 국밥에 넣어 먹어 볼 것을 권한다. 여명808 하나 사먹을 돈이면 당신은 환상적인 해장국을 맛 볼 수 있다. 게다가 효과는 여명보다 훨씬 더 낫다!

현대옥은 1년 전부터 체인사업을 시작하였고, 내가 경험한 바로는 여러 체인점에서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1인 손님을 배려한 인테리어 덕분에 어제 같이 술을 먹은 동료가 비지니스 파트너와 먼저 점심먹으러 나가버렸어도 전혀 부담없이 전날의 숙취를 해결 할 수 있다. 서울에도 슬슬 생기고 있는 듯 하니 기회가 된다면 경험해 보시길.

 
Posted by 꾸비스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