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

2010. 11. 16. 22:41 from Metaphor

최근에야 비로소 스스로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나에게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배터리 부족 등으로 하루 종일 꺼져있던 전화기를 막 켜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 두려움은 매우 커진다. 폰이 켜지는 동안 손에는 식은 땀이 배어나고, 동공은 팽팽하게 조여지며, 모공에서는 피지가 마구 샘 솟,을리가 있나. 아무튼 그럴 땐, 대출상담보다는 나의 심리적 문제에 대해 상담해줄 미모의 상담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을 바탕으로 나의 유년시절을 미루어보면 딱히 결핍이었던 것은 없다. 엄마 젖도 충분히 물었고, 놀이공원에서 부모님 손을 놓쳐서 안내소로 인도되거나, 이상한 아저씨에게 끌려가서 지하철에서 "저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따위를 한 기억도 없다. 유독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는 말을 많이 들은 것도 아니다. 저녁밥만 먹고나면 '착한 어린이, 어서 빨리 자기 방에 들어가서 꿈나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그랑죠가 맨 땅에서 솟아오르는 허황된 내용에 집착하며 우리집 막둥이의 탄생을 방해할텐가!'라고 강요당한 것도 아니다.

엄마 아빠가 부부싸움을 너무 심하게 해서, 언젠가는 버림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아니다. 난 그저,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아무래도 제대로 된 밥을 얻어먹고 178cm까지는 크려면 역시나 엄마와 함께 사는게 낫다는 현실적인 계산정도를 하고 있었던거 같다. 근데 왜 부모님은 화목하게 잘 사시는데, 먹을거 다 먹고 너는 178cm까지 크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이미 시대의 요구는 180을 훌쩍 넘겨버린지라, 177이나 179나 루저이긴 매한가지라고 답하겠다. (사실 최근 10년간 1cm가 컸다. 그러므로 어쩌면 마흔 살엔 178cm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가끔 '엄마 백원만'에 실패해서 포도맛 폴라포와 뽀빠이 대신에 뺨따구 맞은 적은 있지만, 그 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긴다면 당시에 나랑 같이 놀이터에서 놀던 코찔찔이들은 태반이 정신적인 불구가 되었어야 마땅할 것이고, 그 정도의 비율이라면 분명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한 번 쯤 되었을 법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이러한 강박감은 역설적으로 내가 좀 더 독립적이기를 지속적으로 주문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 것 같고, 쓸데없이 예민할 것 같고, 까칠하고 까다로울 것 같은 사람이 된 것 같지만, 그저 원만하기만 한 아랫배를 보면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Posted by 꾸비스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