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삼성을 생각한다 - 김용철 씀'을 읽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KTX열차에 오르는 길에 펴들었는데,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화 때문에, 평소와 달리 책을 보다 잠에 취해 기절하는 행복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짐작만 하고 있던 배우자의 불륜을 비밀연애편지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오늘도 퇴근하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고생하고 있을 수 많은 삼성의 임직원들이 그저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회사의 돈으로 개인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재계에 전방위적인 불법 로비를 일삼으며,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졌지만 법조계에서는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고, 더러운 돈이 세상의 빛을 보도록 인정해 주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삼성의 돈을 받은 사람들을 외려 '중용'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광고주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어'다녔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재벌은 나쁘지만, 얼굴없는 금융자본은 더 나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대기업의 편입니다. 제일 나쁜 놈과 그다음으로 나쁜 놈 편인 셈이지요. 서민의 편은 누구입니까?
서민의 편은 서민밖에 없습니다. 노동자의 편은 노동자 밖에 없습니다. 맑스의 자본론은 이제 유행이 지난 촌스러운 이야기취급 받으며 책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가 예견한 자본주의의 악몽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적을 잃은 자본주의는 그 겉모습만 바꾼 채 세상을 정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거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뭘 어쩐다고 세상이 바뀌겠어?'라고 누군가가 생각할 때도, 새로운 세상을 구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실제로 그들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됩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했던 사람들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뀝니다, 우리가 생각한대로.